엘비스 프레슬리 삶과 사망까지

85 / 100

록앤롤의 왕이라 불리는 엘비스 프레슬리는 1977년 8월 16일에 그의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되었습니다. 오늘은 23년 8월 16일이네요. 벌써 56년이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비스 프레슬리는 아직도 화자될 정도로 전설이 되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기념하는 마음으로 어린시절부터 그의 음악스타일 그리고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와 숨겨진 이야기, 그의 기념관, 그리고 히트곡에 대해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어린시절

1. 태생과 어린 시절

엘비스 아론 프레슬리는 1935년 1월 8일 미국 테네시 주 튜플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동생 제시 가론 프레슬리는 출생 직후 사망했습니다. 엘비스는 그의 부모 베른스와 글래디스 프레슬리와 함께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가족은 종교적이었으며, 일요일마다 교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엘비스는 gospel 음악을 듣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2. 음악에의 관심

엘비스의 음악적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두드러졌습니다. 그는 1945년에 10세 때 테네시 주 페어에서 노래 대회에 참가하였으며, 두 번째 등상을 차지하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1946년에 기타를 선물하였습니다. 엘비스는 이 기타를 가지고 연습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3. 흑인 음악에의 관심

엘비스가 미시시피 주에서 13세까지 생활한 후, 가족과 함께 테네시 주 멤피스로 이사하게 되면서, 그의 음악적 취향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멤피스는 당시 흑인 음악이 번성하던 도시로, 엘비스는 주변에서 흑인 음악을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흑인 음악을 통해 블루스, 리듬 앤 블루스, 그리고 소울과 같은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흑인 음악에 대한 열정은 그를 흑인 음악 클럽에 자주 들려 재즈와 블루스 음악을 듣게 만들었습니다. 이 경험은 엘비스의 음악적 취향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음악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4. 고등학교 시절

멤피스의 Humes High School에 다니면서, 엘비스는 자주 노래 대회에 참가하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는 흑인들의 음악을 계속해서 듣고 따라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교회에서도 종종 노래를 부르며, 그의 목소리와 무대 매너는 주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모두 엘비스 프레슬리가 음악계에서 빛나는 별로 자리 잡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의 태생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엘비스는 그의 음악적 재능과 흑인 음악에 대한 열정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찾아나갔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이 나오기까지

1. 첫 녹음과 발견

엘비스는 1953년 18세의 시절에 어머니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My Happiness”라는 곡을 녹음했습니다. 그는 멤피스의 Sun Records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스튜디오 주인인 샘 필립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샘은 엘비스의 독특한 목소리에 매료되어 이후에도 엘비스를 주목하게 됩니다.

2. 데뷔와 초기 성공

1954년, 엘비스는 샘 필립스에게 발견되어 Sun Records에서 데뷔하게 됩니다. 그의 첫 싱글은 “That’s All Right”와 “Blue Moon of Kentucky”였습니다. 이 곡들은 큰 히트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엘비스의 독특한 스타일과 목소리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엘비스는 스콧티 무어와 빌 블랙과 함께 밴드를 결성하며 다양한 곡을 녹음하고 활동했습니다.

3. 히트곡의 등장

1956년에는 엘비스의 첫 번째 히트곡 “Heartbreak Hotel”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곡은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그의 이름을 국민적인 스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후에도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 “Hound Dog”, “Don’t Be Cruel” 등의 곡들이 연이어 히트를 기록하며 엘비스는 락앤롤의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4. 콜론엘 톰 파커와의 만남

엘비스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면서 그의 매니저로 콜론엘 톰 파커가 나섰습니다. 톰 파커는 엘비스의 경력을 계획하고 관리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엘비스는 RCA 레코드와 계약을 맺게 되었고, 이후로도 그의 음악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가게 되었습니다. 톰 파커는 엘비스의 경력을 크게 도왔지만, 그의 수입과 음악에 대한 관리 방식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엘비스의 초기 데뷔부터 히트곡의 등장, 그리고 콜론엘 톰 파커와의 만남까지의 과정은 그의 음악 캐리어에서 중요한 단계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빠른 시간 내에 락앤롤의 대표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개인적인 삶

1. 가족

엘비스는 1935년 1월 8일 미시시피 주 튜펠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버논 프레슬리와 글래디스 프레슬리였으며, 엘비스는 이들의 유일한 생존한 자식이었습니다. 가족은 비교적 가난한 가정이었으나, 엘비스는 부모와 매우 가까웠습니다. 특히 그의 어머니와의 관계는 매우 깊었으며, 그녀의 사망 후에도 엘비스는 그녀를 많이 그리워했습니다.

2. 결혼

엘비스는 1967년 5월 1일 프리실라 보울리에와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은 1960년 독일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으며, 그때 프리실라는 단 14세였습니다. 그들의 결혼은 화려한 결혼식으로 알려졌으며, 그들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는 1968년 2월 1일에 태어났습니다.

3. 이혼

엘비스와 프리실라의 결혼은 처음에는 행복하게 시작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엘비스의 바쁜 스케줄과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두 사람은 결국 1973년 10월 9일에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이혼 후에도 서로를 존중하며 딸 리사 마리의 양육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4. 사망

엘비스는 1977년 8월 16일, 테네시 주 멤피스의 그레이스랜드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사망은 갑작스러웠으며, 그가 불시에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많은 이론과 추측이 있습니다. 그의 사망은 전세계의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그의 음악은 그의 사망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개인적인 삶은 그의 음악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그의 사망은 그의 팬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으며, 그의 음악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숨겨진 이야기

1. 신분 대체

엘비스는 자신의 엄마인 글래디스에게 매우 애정이 있었고, 그녀가 1958년에 사망했을 때, 그는 심각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슬픔은 이를 본 모든 이들에게 알려졌으며, 그를 위로하기 위해 그의 친구들과 머니저 톰 파커가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때문에 엘비스는 톰 파커와의 관계가 더 깊어졌으며, 그는 그를 아버지처럼 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2. 필로우 라이츠

엘비스의 잠이 들지 않는 습관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종종 자신의 침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들의 대화는 “필로우 라이츠”라고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순간들은 엘비스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힐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3. 자선 활동

엘비스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선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자주 후원금을 기부하였으며, 기부금은 대부분 그의 고향인 튜펠로와 멤피스의 병원, 학교, 단체들에게 갔습니다. 또한, 그는 필요한 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개인적으로도 많은 돈을 기부하였습니다.

4. 철도 노동자

엘비스의 아버지 버논은 철도 노동자였습니다. 그는 여러 차례 일자리를 잃었으며, 이로 인해 가족은 매우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엘비스가 어린 시절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자란 것을 의미하며, 그가 성공한 후에도 그의 부모와 함께 그레이스랜드에서 살았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러한 숨겨진 이야기들은 그의 음악 외에도 그를 더욱 특별한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을 매우 소중히 여기며, 그를 도와준 이들에게는 항상 고마움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그의 인간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그의 팬들에게 그를 더욱 가깝게 느끼게 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기념관

엘비스 프레슬리의 기념관은 그레이스랜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레이스랜드는 테네시 주 멤피스에 위치하며, 엘비스 프레슬리가 20년 동안 살았던 집입니다. 엘비스가 1957년에 구매한 이 집은 그의 사망 후에 기념관으로 개방되었으며, 현재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사적 주택 중 하나입니다.

그레이스랜드의 주요 명소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메인 하우스

엘비스의 집은 웅장한 식민지풍 건물로, 이곳에서는 그의 생활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집 안에서는 그의 거실, 부엌, 식당, 침실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그의 개인적인 소장품도 볼 수 있습니다.

2. 메디테이션 가든

엘비스 프레슬리와 그의 부모, 그리고 그의 할머니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엘비스는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명상을 하곤 했습니다.

3. 트로피 룸

이곳에서는 엘비스의 수많은 상과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음악 경력 동안 수많은 상과 영예를 얻었으며, 이곳에서는 그의 성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자동차 박물관

엘비스는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 있었으며, 그의 컬렉션 중 일부를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레이스랜드는 엘비스의 팬들뿐만 아니라 음악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인 명소입니다. 이곳을 방문하면 엘비스의 무대 뒤의 삶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

  1. “That’s All Right” (1954)
  2. “Good Rockin’ Tonight” (1954)
  3. “Baby Let’s Play House” (1955)
  4. “Mystery Train” (1955)
  5. “Heartbreak Hotel” (1956)
  6.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 (1956)
  7. “Don’t Be Cruel” (1956)
  8. “Hound Dog” (1956)
  9. “Love Me Tender” (1956)
  10. “Too Much” (1957)
  11. “All Shook Up” (1957)
  12. “(Let Me Be Your) Teddy Bear” (1957)
  13. “Jailhouse Rock” (1957)
  14. “Don’t” (1958)
  15. “Hard Headed Woman” (1958)
  16. “A Big Hunk o’ Love” (1959)
  17. “Stuck on You” (1960)
  18. “It’s Now or Never” (1960)
  19. “Are You Lonesome Tonight?” (1960)
  20. “Can’t Help Falling in Love” (1961)
  21. “Return to Sender” (1962)
  22. “Devil in Disguise” (1963)
  23. “Viva Las Vegas” (1964)
  24. “Suspicious Minds” (1969)
  25. “In the Ghetto” (1969)

엘비스 프레슬리 영화

1. 엘비스 프레슬리가 출연한 영화 (일부)

  1. “Love Me Tender” (1956)
  2. “Loving You” (1957)
  3. “Jailhouse Rock” (1957)
  4. “King Creole” (1958)
  5. “G.I. Blues” (1960)
  6. “Flaming Star” (1960)
  7. “Wild in the Country” (1961)
  8. “Blue Hawaii” (1961)
  9. “Follow That Dream” (1962)
  10. “Girls! Girls! Girls!” (1962)
  11. “It Happened at the World’s Fair” (1963)
  12. “Fun in Acapulco” (1963)
  13. “Viva Las Vegas” (1964)
  14. “Roustabout” (1964)
  15. “Girl Happy” (1965)
  16. “Tickle Me” (1965)
  17. “Paradise, Hawaiian Style” (1966)
  18. “Spinout” (1966)
  19. “Double Trouble” (1967)
  20. “Easy Come, Easy Go” (1967)
  21. “Clambake” (1967)
  22. “Stay Away, Joe” (1968)
  23. “Speedway” (1968)
  24. “Live a Little, Love a Little” (1968)
  25. “Charro!” (1969)
  26. “The Trouble with Girls” (1969)
  27. “Change of Habit” (1969)
  28. “Elvis: That’s the Way It Is” (1970)
  29. “Elvis on Tour” (1972)

2. 엘비스 프레슬리를 소재로 한 영화 (일부)

  1. “This is Elvis” (1981) –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로, 엘비스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2. “Elvis” (2005) – TV 미니시리즈로, 엘비스의 초기 경력과 그의 관계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3. “Elvis & Nixon” (2016) – 엘비스 프레슬리와 리처드 닉슨 대통령 간의 실제 만남을 바탕으로 한 영화.
  4. “The Searcher” (2018) –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 경력과 그의 인생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엘비스 프레슬리의 재산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의 생전에 큰 부를 축적했으며, 그의 죽음 이후에도 그의 유산은 계속해서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의 최대 자산 중 하나는 그의 집인 그레이스랜드(Graceland)입니다. 그레이스랜드는 멤피스, 테네시에 위치하며, 엘비스의 팬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입니다.

2019년에 발표된 포브스 매거진의 보고서에 따르면, 엘비스 프레슬리의 유산은 그의 사망 이후에도 매년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의 음악 권리, 상품 판매, 그리고 그레이스랜드 관광 수익을 포함한 그의 유산의 총 가치는 수십억 달러로 추산됩니다.

그의 유산은 그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가 상당 부분을 상속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유산에 대한 관리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의 유산은 그의 음악과 이미지를 계속해서 활용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그의 레거시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끝으로 그의 딸은?

리사 마리 프레슬리는 미국의 가수이자 작사가로, 그녀의 부모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프리실라 프레슬리입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아 그의 부를 계승했으며, 또한 자신만의 음악 경력도 쌓고 있습니다. 그녀는 2003년에 데뷔 앨범 “To Whom It May Concern”을 발표했으며, 이 앨범은 빌보드 200 차트에서 5위를 차지했습니다. 이후에도 그녀는 여러 앨범을 발표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녀는 네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었으며, 그 중에는 유명한 뮤지션 마이클 잭슨과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와의 결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녀는 아버지의 유산 관리와 관련하여 몇몇 문제를 겪기도 했습니다. 2018년에는 그녀의 재정 관리자와의 분쟁으로 인해 그녀의 재산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보고서도 있습니다.

그녀의 개인적인 삶과 관련하여, 그녀는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그녀의 첫 번째 결혼에서는 한 명의 딸을 두었으며, 네 번째 결혼에서는 쌍둥이 딸을 두었습니다. 그녀는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녀의 음악 경력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녀의 음악 활동보다는 그녀의 부모, 특히 그녀의 아버지 엘비스 프레슬리의 레거시를 이어받고 유지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레이스랜드를 포함한 아버지의 유산을 관리하고 있으며, 팬들과 함께 그의 기억을 기리고 있습니다.

다른 일상상식이 궁금하다면?

Leave a Comment